서울에서 개최되는 WEA를 염려하며...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인 가톨릭에 대한 이해WEA는 이번을 계기로 구원에 관한 모호한 신학을 바로잡고, 가톨릭과 연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개개인에게 온전히 복음을 전하는데 앞장서는 그룹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WEA를 염려하며...(II)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인 가톨릭에 대한 이해
조남민 (한인성경선교회 회장)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WEA의 한국 총회를 반대하는 주요쟁점 3가지 중에 두 번째가 ‘세계교회협의회(WCC) 및 바티칸과의 교류’이다. 그러면 왜 한국교회 사역자들이 이 부분에 그렇게 민감할까? 그 이유 중의 하나로써 이러한 교류가 바른 신학에 누룩을 넣는 것처럼 신학이 변질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은 어디서든지 에큐메니컬, 즉 교회 일치 운동을 촉구하며 이것을 성취하는데 물심양면으로 힘을 쓰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특히 바티칸 제2회의 이후에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 1부에서 본 것처럼 그들의 적극적인 운동으로 인해 4가지의 결과를 소개했다.
1517년 종교개혁 이후에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눈에 쉽게 띄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신교가 가톨릭에 의해 교회 일치 운동을 촉구받고 있다. 이에 대한 50여 년의 결과가 위와 같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일치 운동을 하는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티칸 제2회의(1962-1965)에서의 법령 때문이다. 바티칸 제2회의에서 다른 결정들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에큐메니컬, 즉 교회일치운동이다.
가톨릭의 교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가톨릭의 바티칸 제2회의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의 서문을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 바오로 주교는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과 더불어 영구적인 기록으로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공포한다.
다시 말하면 이 교령은 지워질 수 없는 영구적이고, 교령이다. 교령이란 바티칸 공의회가 제정한 법령이다. 그러므로 이 일치 운동은 가톨릭이 절대적으로 이루어야 할 사명이다. 가톨릭이 절대적으로 책임을 갖고 일치 운동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신교를 돌아보면 이러한 운동이나 법령이 있는가? 혹자는 일치 운동은 개신교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교회가 이것을 말했고 이런 운동을 시작했는가? 성경에서 우리 주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은 해도 어느 누가 혹은 어느 교회가 교회 일치 운동을 전개했다고 한 적이 있는가? 없다. 이는 철저하게 가톨릭이 그들의 법령을 따라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에큐메니컬 운동은 바티칸 제2회의를 기점으로 열심히 진행된 운동인 것이다. 그러면 그 내용은 어떤가? 바티칸은 이 운동을 위해 교령 24개를 세웠다. 그중에 눈에 띄는 교령들을 요약해본다.
[일치 교령] 1. 서론: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을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촉진하려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대한 목적의 하나이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이고 유일하다.”…. “모든 이가 자신이 주님의 제자라고 공언하지만, 그리스도 자신이 갈라지시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분명코 이러한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에 명백히 어긋나며,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할 지극히 거룩한 대의를 손상시키고 있다.” [일치 교령] 2. 교회의 일치와 단일성: 그리스도 예수께서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인 것처럼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다. 또한 “당신의 교회 안에 놀라운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고 이룩한다.” 그리스도가 “베드로 위에 당신의 교회를 새우”셨고, “베드로의 후계자를 으뜸으로 하는 주교들”이 “완전한 일치 안에서 양 떼를 치게 하셨다.” [일치 교령] 3.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형제와의 관계: 기독 신자들은 “갈라진 형제”로 간주. “우리에게서 갈라진 형제들은…. 일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의 보편적 수단인, 그리스도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완전한 충만함에 이를 수 있다” [일치 교령] 4. 일치 운동: “가톨릭 신자들이…. 화합과 협력, 형제애와 일치의 손익에 이바지하며 일치 운동을 촉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목자들의 감독 아래 가톨릭 신자들이 지혜롭게 또 인내로 이 이행할 때에….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일치 교령] 24.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의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화해시키려는 이 거룩한 목표는 인간의 힘과 재능을 초월한다는 것을 공의회가 잘 알고 있음을 밝힌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기독교인들은 이탈한 형제들이고, 그들은 일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에서 어긋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수단인 하나이고 유일한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주교 및 가톨릭 지도자들의 감독 아래 이 일치 운동을 촉진해야만 한다.
교령에 따른 가톨릭의 교회일치운동 이렇게 교회일치운동을 추구하는데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글이 있다. 바로 교령 24이다.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바티칸에서 추구하고 모든 가톨릭 교인들에게 촉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이다. 어떤 가톨릭 교인이라도, 주교든, 신부든, 수녀든, 평신도든 이 일치 운동에 참여하여 하나 되게 해야 하고, 이미 60년 전에 그 기준도 명확히 공표했다. 바로 온전히 가톨릭적이 아닌 에큐메니컬 운동은 있을 수 없다고 명한 것이다. 이는 서로 양보하며 타협해서 하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반드시 가톨릭적인 일치이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서 1965년에 바티칸 제2회의를 마치기 전부터 가톨릭 교령에 근거하여 가톨릭은 에큐메니컬 운동을 추진해왔다. 가톨릭의 이런 교령은 영구적임을 명시했고, 이는 곧 교회 법령임으로 영구적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사명이요 책임인 것이다. 개신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반듯이 이루어야 하는 사명임을 인지해야 할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기회가 되면 언제 어디서나 이 운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WCC가 바로 이런 운동에 노출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톨릭은 WCC에 가입 회원이 아니면서도 위원회에 가입해 영향을 주었다. 가톨릭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결과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놀라울 정도다. 개신교와 성경을 출간하고, 루터교와 감리교의 믿음 교리를 하나 되게 했다. 이는 가톨릭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WEA는 어떤가? 두 가지만 논해본다. 첫째는 현재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WEA는 지난 40년간 가톨릭과 대화를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만남과 대화가 가톨릭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는 속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WEA가 WCC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만일 정신 줄을 놓고 계속해서 만난다면 WEA가 WCC처럼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둘째는 현재 존재하는 믿음 신조로는 성경적인 복음을 올바로 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WEA는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로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가톨릭 구원과 개신교의 구원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개신교에서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협력할 것이 아니라, 가톨릭의 구원관과 성경의 구원관을 올바로 이해했던 종교개혁의 선배들처럼,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기독교인은 바른 복음을 전하면서 가톨릭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3부에서 가톨릭의 구원을 성경적인 구원과 비교하며 알아보고자 한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WEA를 염려하며…. (III)
가톨릭의 6가지 구원의 길을 잘 이해하고 성경적인 복음을 전하자
조남민 (한인성경선교회 회장)
1부와 2부에서 우리는 세계복음연맹(WEA)의 믿음 신조를 살펴보았다. 또한, 서울 총회를 반대하는 데 대한 WEA의 응함에 기록된 구원의 길(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생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도 지적했다. 세계복음연맹(WEA) 신학위원회 수석 고문인 토마스 존슨이 요한1서 4장 2~3절로 믿는 형제자매를 규정하는 글도 보았다. 또한, 가톨릭과의 40년의 대화를 기록한 문서에 “토론과 각자의 문서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복음주의자들과 가톨릭교도들은 하나님의 계시와 교회에서 성경의 위치에 관해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기록도 보았다. WEA가 복음으로 연맹을 맺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WEA가 하는 주장이다. 우리가 알듯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가톨릭의 구원론이 성경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가톨릭에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했고 실제 그렇게 해왔다. 만일 WEA가 가톨릭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한다면 40년에 걸친 가톨릭과의 대화가 아니라 가톨릭의 구원 신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연구해서, 그것이 성경적이 아니라면 구원을 위해 마땅히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런 대화에 힘과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것이 아니고 시간을 들여 가톨릭의 구원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고로 여기서 가톨릭의 구원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구원론은 일반 신자나 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의 믿음의 표준(norm)”이라고 하는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근거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성경의 구원으로 판단하고자 한다.
구원을 위한 로마 가톨릭의 6가지 조건 우선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가톨릭의 구원이 죽기까지 이루어야 하는 긴 여정인 것이다. 개신교에서 이해하는 구원의 즉각 성과 점진성과는 다른 관점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즉각적으로 용서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화의 삶을 점진적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즉각 성과 점진성이다. 그러나 가톨릭은 구원이 죽기까지 계속되는 여정이고 만일 가톨릭이 분류한 죄를 지으면 구원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고해성사함으로 다시 구원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긴 여정인 것이다. 이 여정에서 구원에 필요한 6가지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
1. 구원을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 가톨릭은 구원을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고 가톨릭 교리서는 말한다.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구원을 위하여 그분을 보내신 분을 믿는 신앙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고’(히브 11,6), 하느님 자녀의 신분을 얻지 못하며….” [가톨릭교회 교리서 161항]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기록한 이 말은 매우 성경적이다. 가톨릭의 구원 가르침에 이런 고백이 있으므로 개신교에서 이 글을 보면 가톨릭의 신앙과 개신교의 신앙이 같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런 고백이 있으므로 루터교와 감리교가 의화교리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의 구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톨릭의 구원과 개신교의 구원이 다른 것이다. 다음을 보자.
2. 구원을 위해 뱁티즘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복음을 전하고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세례는 복음을 듣고 이 성사를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257항]
가톨릭은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사실 가톨릭의 구원은 세례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유아 때에 세례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음으로 죄가 용서되고 정화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다음 가톨릭 교리서의 글을 보자.
세례의…. 두 가지 중요한 효과는 죄의 정화와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262항]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는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 있지 않다. 곧 아담의 죄도, 본죄도, 죄의 가장 중대한 결과인 하느님과의 단절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263항]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신자를 “새사람”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 성령의 성전이 되게 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265항]
이렇게 세 항만 보아도 가톨릭의 구원에서 세례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세례로 모든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새사람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신교에서의 죄용서와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예수님을 믿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오”(47절) 라며 뱁티즘을 베풀었다. 다시 분명히 하면 가톨릭은 세례를 받음으로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론이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런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위에 말한 것은 비성경적인 구원이다.
3. 구원을 위해 가톨릭교회가 필요하다.
교부들이 자주 반복했던 이 단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이해할 때, 이 말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846항]
이 말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이다. 가톨릭의 모든 구원은 교회를 통해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구원을 위한 세례도 교회에서 주고, 다음에 나오는 성사들도 교회를 통해 주는 고로,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는 말이다. 가톨릭교회가 구원의 수단인 반면에 성경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음을 말하니 구원을 위해 가톨릭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4. 구원을 위해 성사가 필요하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사의 은총’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총이며, 각 성사에 고유한 것이다……. 성사 생활의 효과는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들이신 구세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846항]
가톨릭은 성사들이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에는 7 성사가 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가 그것이다. 이런 성사에 생활하므로 구원의 긴 여정이 계속되게 한다. 이러한 성사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니 구원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5. 영생을 얻기 위해 선행이 필요하다.
교회에 합체되더라도 사랑 안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24항]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위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데 유용한 모든 은총뿐 아니라, 필요한 물질적 재화까지도 얻게 해 주는 공로를 쌓을 수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027항]
가톨릭교회는 가톨릭의 세례로 죄용서 받고 교회와 합체된다고 해도 사랑을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이르는데 공로를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구원이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 2:8-9)의 말씀에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말이다. 성경에서 많은 부분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롬 3-5장, 갈 2장). 그러므로 이 또한 성경적이 아니다.
6. 영생을 얻기 위해 십계명이 필요하다 2075 2068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6-17). [가톨릭교회교리서 2075항]
트리엔트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십계명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며, 의화된 이들도 이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를 재확인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아 또 계명을 지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68항]
가톨릭의 구원 조건 중 6번째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믿고 세례를 받아 또 계명을 지켜 구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십계명을 지켜 구원받는다고 하지 않는다. 물론 구원받은 사람이 당연히 지켜야 할 사항이지만 이것을 지킴으로 구원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이미 죄로 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 여기까지 우리는 가톨릭의 구원에 대해 보았다. 구원을 위해 가톨릭의 6가지 조건 중에 성경적인 것은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이다. 이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성경적인 조건들이다. 한 가지 알 것은 가톨릭의 구원 가르침이 변했다거나 변하고 있다거나 변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변화되어서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가톨릭을 오래 연구한 사람에 의하면 그동안 가톨릭의 가르침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강화되었지 약해지거나 변화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존재하던 것에서 덧붙여지는 것이지 제거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러한 가톨릭의 구원과 앞에서 말한 WEA 구원관을 비교할 때,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첫 번째 나온 항목조차도 다르다. WEA의 수석 고문의 기준인 요한 1서 4장 2~3절의 말씀과도 다르다. 그러니 WEA가 해야 할 것은 바른 구원 관을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더 이상 가톨릭과의 공통점을 찾는 대화란 의미가 없다. 이런 배경을 생각할 때 WEA나 WCC나 또 개신교 각 교회들은 절대로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가톨릭과 교제하기 위해 대화로 공통점을 찾는 데 힘과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 우리는 구원을 잘못 알고 행하는 사람들, 즉 성경적 복음을 잘못 알아 영생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 개개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밖에 없다. WEA나 WCC가 이에 앞장서야 한다. 바티칸 제2회의 이후로 개신교가 가톨릭에 복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바티칸이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개신교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바티칸은 이 촉구를 온 가톨릭 신자들이 해야 할 것으로 명령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이 개신교에 접근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미 결정된 법이고, 명령한 법령이다. 가톨릭은 이제 이 주어진 사명을 위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개신교에 접근해서 그들의 사명을 이루고자 한다. 개신교가 가톨릭을 변화시키겠다가 아니라 가톨릭이 개신교를 변화시키겠다고 접근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톨릭이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하며 접근하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WEA가 가톨릭과 대화하고 공통점을 찾는 글을 읽을 때 큰 염려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올바로 안다면 가톨릭과의 대화가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성경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의 복음이 종교개혁자들의 “솔라”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성경적 복음의 근본인 “오직 성경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은혜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으로”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여기까지 이번 서울 총회 사태를 보며 WEA에 대해 염려되는 것들을 글로 써보았다. 그러므로 WEA는 이번을 계기로 구원에 관한 모호한 신학을 바로잡고, 가톨릭과 연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개개인에게 온전히 복음을 전하는데 앞장서는 그룹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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