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서울총회"서울에서 개최되는 WEA 총회를 염려하며…(I)WEA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 모호함과 위험성
서울에서 개최되는 WEA 총회를 염려하며…(I)
WEA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 모호함과 위험성 조남민목사 (한인성경선교회 회장)
(본 글은 서을에서 개최되는 WEA 총회를 염려하며 3부로 나누어 썼다. 1부는 WEA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 모호함과 위험성, 2부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인 가톨릭에 대한 이해, 그리고 3부는 가톨릭의 6가지 구원의 길을 잘 이해하고 성경적인 복음을 전하자-로 구성한다.)
요즈음 한국교회들이 곧 다가올 (2025년 10월 27~31일) “세계복음주의연맹 (World Evangelical Alliance, WEA)의 한국 총회”에 대해 논란이 많다. 이는 하루 이틀의 논란이 아니라 지난해, 2024년 11월, 이 총회가 장로교 합동 교단에 속한 사랑의 교회(오정현목사 시무)에서 개최한다는 발표 이후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세계복음주의연맹의 취지에 왜 말이 많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에게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할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는 반드시 장려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논란이 일어날까? 2024년 12월 5일 자의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의 글에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반대하는 주요쟁점 3가지를 제기했다.
첫째, “WEA의 사회적 책임 강조,” 둘째, 세계교회협의회(WCC) 및 바티칸과의 교류, 셋째, “신학적 모호성”이다.
이를 중심으로 2025 WEA서울총회반대연합회 신학위원회(위원장 문병호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025 WEA서울총회 반대연합회, 한국 WEA 반대 목회자·성도 연합회가 9월 15일에 반대 성명을 냈다. 예장 합동 신학자들이 발제하고 위원장 문병호 교수가 발표한 반대 성명 10조목은 이 세계복음주의연맹의 현재 행보가 어떤 상황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성명서는 이 연맹에 대해 위의 세 가지 쟁점을 분석하여 적절히 잘 표현했다. 그래서 이 성명서의 10가지의 문제점을 통해 이 연맹의 특성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자는 이 세 가지 쟁점 중의 둘째 셋째인 ‘세계교회협의회(WCC) 및 바티칸과의 교류’와 ‘신학적 모호성’에 대해 큰 염려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화합단체에서 정통신학이 자유주의 신학과 만날 때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주의가 항상 우위를 차지하는 듯한 모습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예와 결과들을 살펴본다.
개신교와 가톨릭과 교류한 예와 결과들 예를 들면, 1994년에 복음주의와 가톨릭과 함께 작성했던, “복음주의와 천주교가 함께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ETC)”가 있다. 이때에 J.I 패커같은 신학자들이 이 문서에 서명했다. 당시 정통 복음주의 신학자들 (존 앵커버그, 제임스 케네디, 존 맥아더, R.C. 스프롤)이 이를 철저하게 반대했다. 이때 필자가 존 맥아더 목사로부터 직접들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당시 존 맥아더 목사가 J.I. 패커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이 문서에 서명을 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J.I. 패커는 ’가톨릭에게도 바른 복음을 전해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고 한다. 이제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과연 복음주의자들이 이 ‘복음주의와 천주교가 함께’라는 화합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가? 복음이 그렇게 전파되었을까? 눈에 띄는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나타난 것은 이런 화합을 통해 가톨릭이 교회 일치 운동에 더 박차를 가하는 모습들이다.
또 하나의 예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 WCC)를 보자. WCC는 1948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 하나님이자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설립된 기독교 교회협의회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WCC는 초기에 44개국에 속한 147개의 교회들로 시작했다. 그 후 WCC의 전환점은 1961년 뉴델리로 알려져 있다. 이때, WCC는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IMC)와 하나가 된다. 여기서 이 모임은 동유럽에 존재하는 정교회들을 멤버로 환영했고, WCC는 신학적 기반을 확대했다. 이렇게 196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지리적으도 확대해 아프리카 교회들을 포함시키며 회원 기반을 더욱 다양화하게 했다. 이렇게 신학적인 기반이 확대되면서 회원 교회들의 탈퇴와 가입의 변동이 계속되더니, 현재는 110 나라로부터 350 교회들의 멤버를 갖고 있다. WCC와 가톨릭교회는 어떤가? 가톨릭과 WCC는 언뜻 보기에 미묘한 관계에 있다. 가톨릭교회는 1972년에 교회 구조의 다른 점 등을 이유로 WCC에 회원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WCC의 회원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가톨릭교회는 WCC의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매우 긴밀한 파트너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WCC의 회원 교회는 아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과 질서 위원회 등 WCC 위원회의 정회원이다. 그래서 이를 통해 주요 신학 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주요 회의에 참관인을 파견하고, 신앙과 질서와 같은 WCC 위원회에 대해 완전한 투표권을 가진 가톨릭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바티칸과 WCC 사이에는 1965년 제2 바티칸 회의 이후부터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공식적인 공동 작업그룹이 구성되었다. 가톨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함께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일치운동이 기독교 일치 기도 주간과 같은 사업과 평화, 정의, 그리고 종교 간 대화를 위한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 바티칸과 개신교와의 이런 미묘한 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야 그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가톨릭이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세기 동안 적극적으로 추진한 운동의 결과에 대해 4가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1. 공동번역 성경이 출간되다. 이는 제2 바티칸 회의(1962-1965) 이후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에큐메니컬 운동, 즉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한국성서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양측이 함께 번역한 성경이 바로 공동번역 성경이다. 이는 1968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1971년 부활절에 신약성서를 처음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1977년에 외경을 포함한 구약성서가 더해졌다. 결국, 신·구약 공동번역성서가 완성되었고, 이는 한국 교회 일치 운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린다. 그 후에도 ‘개정위원회’를 만들어 1999년 수정판을 발간했다.
2. 가톨릭과 루터교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 이 선언문은 가톨릭이 제2 바티칸 이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했는지를 알려주는 결과이다. 제2 바티칸 회의 이후 가톨릭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물질과 시간을 들여 개신교와 정교회와 영국 성공회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가 보수주의에 한 발짝 주장하며 나가고 반 발짝 후퇴하는 모습처럼 가톨릭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계속되었다. 결국,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다가 루터교는 가톨릭과 합의를 보게 된 것이다. 마루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근본적으로 ‘의화교리’ 때문에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와 타락을 비판하며, 95개 논제를 발표하면서 소위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것을 모르는 개신교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서명된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이 선포되었다. 루터교는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에서 분리된 후 똑같은 10월 31일, 정확히 482년 후에 다시 하나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공동선언문은 16세기 종교개혁의 핵심 쟁점이었던 '의화(義化)' 교리에 대해 루터교와 가톨릭이 근본적으로 교리상 합의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동선언문의 서명 당사자는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 교황청 일치평의회이었다. 이 문서의 핵심내용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핵심 진리에 대해 양측이 모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16세기 종교개혁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의화 교리상의 이견을 좁힌 역사적 합의로 평가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500년 만의 화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양측의 오랜 교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표현한다. 결국, 가톨릭의 적극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이 구원론의 일치라고 합의하면서 루터가 가톨릭과 갈라섰던 것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과의 대화의 위험성을 드러나게 된 것이다. 만일 루터교가 가톨릭과 대화하지 않고 가톨릭에 복음을 전하면서 성경만을 고집했다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감리교와 가톨릭과 루터교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 위와 같은 공동선언문과 함께 계속되는 가톨릭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이제 감리교로 넘어간다. 1999년 루터교와 가톨릭교회의 공동선언에 감리교가 동참한 것이다. 이는 지난 2006년 7월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에서 있었다. 서명에 참석한 사람은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발터 카스퍼 추기경, 루터교를 대표하는 이스마엘 노코 박사(루터교 세계연맹), 감리교를 대표하는 선데이 음방 회장 등이었다. 그 내용은 앞서 루터교와의 공동선언처럼,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한 선물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혹자는 이 공동성명을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의화 교리에 대한 신학적 갈등을 빚었던 세 교회가 500년 만에 이 교리 문제에 대해 화해하고 일치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가톨릭교회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에큐메니컬 운동이 바티칸 제2회의 이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니 참으로 염려스러울 뿐이다. 500년 전에 피를 흘리며 부르짖었던 우리 개혁자들이 이 상황을 보노라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 것인가!
4. 다른 교회들과의 대화. 가톨릭교회는 교회 일치에 대한 그들의 사명을 절대 좌시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위의 루터교와 감리교 외에 다른 교회에도 계속하나 되도록 힘을 들이고 있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1세기부터 같이 있다가 1054년에 소위 ‘동서 교회 대분열’이 일어났다. 그 후 바티칸 제2회의가 끝나기도 전인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와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가 만났다. 이는 1054년 분열 이후 910년 만에 처음으로 두 지도자의 접촉이었다. 그 후 요한 바오로 2세의 끈질긴 외교가 있었고, 결국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가 쿠바에서 만났다. 이 만남은 양 교회가 갈라선 후 겪었던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정교회뿐만 아니라 영국의 성공회도 가톨릭-성공회 국제위원회와 같은 공식적인 대화 기구가 존재하며, 고위 성직자 회의 등 정기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4가지 예는 개혁교회인 개신교가 가톨릭과 연계하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WEA는 어떤가? 세계복음주의 연맹이라는 WEA는 순수하게 성경적인 복음을 고수하고 있는가? 가톨릭과의 연계는 없는가? WEA가 가톨릭과 연계하고 있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인가?
WEA의 가톨릭과의 대화 WEA도 WCC처럼 순수 성경적 복음주의만 고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위험하고 염려된다. 만일 순수 복음주의만 고집한다면 왜 복음주의 교회들이 이 모임을 염려하겠는가? 이제 WEA와 가톨릭과의 대화를 살펴보자. 우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세계복음주의 연맹(WEA) 간의 대화 공식 문서’를 볼 때 이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역사를 알 수 있다. WEA 전 사무총장 토마스 슈마허 대주교는 “복음주의와 로마 가톨릭과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총 156쪽에 달하는 글을 냈다. 이 문서는 2023년에 WEA는 1977년부터 2016년까지 가톨릭과의 대화를 정리해 기록한 것이다. 대화 주제와 기간을 요약해 적어본다.
* 1977년 - 1984년; 선교에 관한 대화 * 1993년 - 2002년: 교회, 복음화, 그리고 교제로의 강한 유대 * 2011년 :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인의 증언 * 2009년 - 2016년: '성경과 전통'과 '구원에 있어서의 교회' - 가톨릭과 복음주의자들이 도전과 기회를 탐구하다.
1977년부터 전체 기간으로 본다면 약 40년을 대화한 셈이다. 필자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어떻게 해서라도 WEA가 가톨릭과 공통점을 찾아보려는 모습이었다. 여기서는 WEA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인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WEA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인 모호함과 위험성 이 부분에서 우리는 WEA의 구원에 관한 가르침에 대해 4가지 경우를 살피며 알아본다. 1. 가톨릭과의 대화에 나타나는 구원교리 WEA는 가톨릭과의 공통점을 2016년까지 대화한 '성경과 전통'과 '구원에 있어서의 교회'에서 “우리의 공통점”이라는 제목 아래 대화를 정리했다.
그분의 말씀과 행적, 기적과 가르침,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죄를 위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구원을 가져오셨으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다.
이 말씀만을 보면 잘못된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원에 관한 이 말씀이 좀 모호해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좀 더 이해하려면 다른 곳에서 구원에 관해 말을 살펴보아야겠다.
2. WEA 믿음 신조에 서술된 구원교리 WEA의 믿음 신조에 기록된 구원에 관한 부분이다 (https:// worldea.org/ who-we-are/ statement-of-faith)
우리는 잃어버린 죄 많은 인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구원받는 것은 행위와는 무관한 믿음과 성령에 의한 거듭남을 통해서 임을 믿는다.
이 신조에 근거하면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며, 성령님의 거듭남을 통해서라고 하니 여기서도 구원이란 바로 이것이다-라는 온전한 서술이라고 볼 수 없이 모호하다. 다시 말해서 죄인이 구원받는 것에 관해 성경적인 온전한 서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위의 글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다음을 보면 WEA의 구원교리가 무엇인지 확실해 짐을 알 수 있다.
3. “2025년 서울 총회 관련 우려에 대한 WEA 성명”에 나타난 구원교리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2025년 1월 27일 자에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한국 총회 발표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게재되었다. 이 글은 “WEA 지도자들이 이번 총회의 공식 조직위원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4일 전, 1,000명의 한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WEA와 한국 최대 장로교 교단인 합동 교단이 WEA와 협력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는 전면 광고를 교회 신문에 게재했다”라고 한다. 이런 논란을 인지하며 WEA는 2025년 5월 17일, “2025년 서울 총회 관련 우려에 대한 WEA 성명(WEA Statement on concerns raised regarding 2025 General Assembly in Seoul)”을 냈다. 여기의 골자는 한국의 목회자들이 WEA와 직접적인 소통이 없이 의문을 제기한 방식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하면서 크게 세 가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첫째 거버넌스(Governance)와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이 문제는 앞에 언급한 WEA의 성명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했지만 여기서는 글의 구성을 위해 먼저 언급하기로 하겠다. WEA는 이에 관련해서 “WEA 리더십에서 특정 개인의 도덕적 품성과 거버넌스 관행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음을 인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경우, WEA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신뢰성, 겸손, 그리고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참고, 여기서는 WEA의 임시 의장이었던 굿윌 샤나(Goodwill Shana)가 신사도운동가인가 아닌가 하는 것들을 논하고 싶지 않다. 물론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 NAR connection) 웹사이트(https://narconnections.wordpress.com/goodwill-shana-2/)를 열어보면 그가 신사도 운동과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해서 논의를 제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보다 WEA의 신학적인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둘째 ‘에큐메니컬 및 종교 간 관계’에 대해,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벗어나는 종교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말한다. 이에 대한 WEA 정책은 “WEA가 복음을 절대 타협하지 않도록 종교 간 및 종교 내 참여 과정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WEA가 종교 간 및 종교 재참여 과정을 ‘복음을 절대 타협하지 않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는 말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요, 반드시 장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협력을 위해 가톨릭과 대화를 한다고 하면 조심해야 하고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음을 이해해야할 것이다. 더욱이 구원의 신학이 온전히 성경적이 아닐 때는 더 염려스럽고 위험성까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2부에서 이에 관해 다룰 것이다.
셋째 WEA의 ‘신학적 입장(Theological Stance)’에 대해. 이 성명에는 WEA의 ‘신학적 입장(Theological Stance)’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WEA는 이에 대해 4가지를 제시한다. 이를 원문과 함께 아래에 적어본다. 신학적 입장
“2025년 서울 총회 관련 우려에 대한 WEA 성명.... 신학적 입장 WEA는 개인, 교회, 교파, 단체를 포함한 전 세계복음주의자들을 위한 친교, 연합, 협력, 공동 행동, 그리고 옹호의 장을 제공하는 회원 조직입니다. 회원 자격은 복음주의자를 정의하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역사적인 원칙들을 준수하는 것을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됩니다.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권위입니다.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생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며,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신자들은 우리 삶과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과 함께 거합니다. *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의, 진리, 그리고 선을 이루는 사적 및 공적 행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WEA의 역할은 복음주의 교리 중 특정 지역이나 문화적 표현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월하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WEA는 이러한 교리를 명백히 지지하는 특정 문화, 지리, 역사에서 비롯된 수천 가지의 신학 체계와 교회 표현을 존중합니다. WEA는 복음주의의 핵심 교리를 기반으로 다양성 속의 일치를 굳건히 믿습니다.“ ******************************** 앞서 말한 것처럼 WEA가 ‘복음을 절대 타협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말은 복음주의자들로서 아주 중요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을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원의 진리가 성경적으로 올바라야만 한다. 만일 이 구원의 진리가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아무리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규정을 갖는다고 해도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셋째 부분의 신학적 입장이다. WEA의 이 신학적 입장이 옳고, 이 복음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하지만 이 신학적 입장이 성경에서 벗어난 상황이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위의 신학적 입장 중 1,3,4항을 제외하고, 구원에 대한 입장이 2항에 있다. 이를 다시 적어본다.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생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며,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Belief in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is the only way for us to be saved to eternal life and we are called to tell others of this good news.)
여기서 우리는 WEA의 구원관에 대해 더 확실히 알게 된다. 사실 필자가 이 글을 읽으면서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큰 WEA가 이렇게 허술하고 성경적으로 부족한 구원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WEA가 얼마나 큰가? WEA는 143개국에 걸쳐 128개의 국가 복음주의연맹으로 구성된 포괄적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계복음연맹(WEA)은 전 세계 6억 명이 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네트워크라고 말할 정도로 거대한 연맹이다.) 그런데 구원에 관한 말씀을 이렇게 허술하게 말한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이 글을 썼는지 묻고 싶고, 그동안 이를 읽고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성경 어디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생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우리 죄를 담당하사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한 것은 중요하고도 중요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를 당연히 믿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영생을 받는 것인가?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귀신들이 더 잘 알고 있고 더 잘 믿고 있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지만 귀신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 혹자는 그거 그냥 쓴 것인데 무얼 그것을 갖고 그렇게 비평하냐고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을 실수로 혹은 ‘그냥’ 쓴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 복음이 곧 WEA를 존재하게 하고 ‘종교 내에서,’ 또 ‘종교 간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6억 인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각하고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생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을 말하려면 정확히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써야만 할 것이다. 절대로 이렇게 엉성하게 쓸 수는 없다. WEA를 대표하는 글을 왜 이렇게 썼을까? 그것도 다가오는 서울 총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쓴 이 구원에 관한 신학적 입장을 이렇게 썼을까? 필자가 의심해 보는 것은 이를 작성한 사람이 성경적 구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WEA에 신학자들도 있고 수많은 목회자들이 있을 텐데 이 글이 발간되기 전에 점검을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만일 성경적인 구원을 올바로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썼다면 그것은 이 WEA에 많은 사람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구원 신학을 모호하게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가진 사람이 이 복음을 쓴다면 결코 이렇게 쓸 수 없다. 어떻게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것이 유일한 영생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는 결코 바른 믿음이 아니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강조해 보지만 바른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단 한 번이라도 이런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구원교리의 모호함에 대한 의심은 앞에서 WEA의 “믿음 신조”를 논할 때도 했었다. “믿음 신조”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죄 많은 인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구원받는 것은 행위와는 무관한 믿음과 성령에 의해 거듭남을 통해서 임을 믿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WEA 믿음 신조를 왜 이렇게 모호하게 썼을까 했지만, 이제 서울에서 발생한 논란에 응한 글을 보니 믿음 신조와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구원에 관한 믿음 신조가 이렇게 되면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WEA에 가입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가톨릭 신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사실(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시고 죽으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간주될 것이고, WEA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이다.
4. “종교개혁 500주년 개신교, 가톨릭, 그리고 서구 문명의 재복음화”에 나타난 구원교리 WEA가 이렇게 성경적으로 부족한 구원관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WEA가 가톨릭과 관계된 글에서 또 하나의 구원에 관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2017년 8월 WEA 신학부 회보에 기록된 글이다. 제목은 “종교개혁 500주년 개신교, 가톨릭, 그리고 서구 문명의 재복음화”이다. 이글은 토마스 존슨(Thomas K Johnson)이 썼다. 그는 세계복음연맹(WEA) 신학위원회 수석 고문으로, 국제종교자유연구소(WEA) 특별 고문으로 섬기고 있다. 17쪽으로 된 이 글은 WEA가 특히 가톨릭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쓴 글이다. 여기 12쪽에 존슨박사는 개신교인으로서 가톨릭과의 협력을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협력의 원칙(Principles of cooperation)‘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가장 핵심이 되는 기준은 가톨릭 신자와 다른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만일 우리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요한일서 4장 2, 3절에 분명하게 표현된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1서 4:2,3)
그는 이 말씀을 기준으로 “이러한 근거로 저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동료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서 그는 “이 원칙을 우리의 현재 상황에 적용하여 가톨릭교회와 그 구성원들을 향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자문해 본다면, 저는 우리가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에 재복음화를 위한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동 노력에는 ‘찬성’이지만, 공동 교회 개척이나 성례 전 예배에는 ‘반대’이며, 교회의 연합은 반대입니다”고 한다. 그는 또한 “하지만 가톨릭교회에는 수백만 명의 소중한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신학적 차이가 있더라도, 많은 이들이 우리와 기본적인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교제를 추구하고 서구 사회를 재복음화하기 위해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해야 합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토마스 존슨의 말을 정리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이니 가톨릭에도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신학적 차이가 있더라도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은 ‘진정한 교제를 추구’하고, ‘서구 사회를 재복음화 하기 위해’ 공동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요한1서 4장 2-3절를 근거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아마 가톨릭교회에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올바로 알 수 있을까? 사도 요한은 요한 1서를 믿는 자에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사도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12가지 테스트를 하고 있다. 간단히 이 12가지 테스트는 다음과 같다. 빛에 거하는 것(1:5-7), 죄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1:8, 9), 죄를 범했음을 고백하는 것(1:10-2:2),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는 것(2:3-6), 형제를 사랑하는 것(2:7-11),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2:12-17),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는 것(2:18-28),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2:29-3:10 a), 형제를 사랑하는 것(3:10 b-24),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것(4:1-6), 형제를 사랑하는 것(4:7-5:5),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는 것(5:6-16). 그리스도인은 이 12가지에 모두 관계된 자들이다. 토마스 존슨은 이 중에 왜 한 가지만 갖고 믿는 자를 판단하는가? 이 중에 하나만을 갖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논하며, 하나님의 자녀다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그렇게 한 가지만 골라 하나님의 자녀니 형제자매들이니 하는 기준으로 삶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꼭 기준으로 삼으려면 왜 12가지를 다 사용하지 않는가? ********************************
우리는 이제 WEA의 구원에 관한 신학의 모호함에 대해 4가지로 살펴보았다. 이해를 돕기위해 이를 간단히 정리해본다.
1. 가톨릭과의 대화에 나타나는 구원교리 * 우리 죄를 위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구원을 가져오셨으며... 2. WEA 믿음 신조에 서술된 구원교리 * 죄 많은 인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구원받는 것은 행위와는 무관한 믿음과 성령에 의한 거듭남을 통해서 임을 믿는다. 3. “2025년 서울 총회 관련 우려에 대한 WEA 성명”에 나타난 구원교리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생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며 4. “종교개혁 500주년 개신교, 가톨릭, 그리고 서구 문명의 재복음화”에 나타난 구원교리 *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
이 4가지는 모두 예수님의 죽음, 피 흘리심, 부활, 육체로 오신 것, 이러한 사실들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구원관이다. 이렇게 WEA의 구원에 대한 신학의 기준이 성경적으로 분명치 않다. 이렇게 말하는 것들이 필자를 답답하게 한다. 구원에 관해서 왜 성경에 있는 대로 말하지 못하는가? 라는 답답함이다. 그냥 성경이 말하는 대로 구원을 말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 가톨릭의 구원과 성경적인 구원에 관해서 제3부에서 논하고자 한다. 하지만 구원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몇 구절만 나누어본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 [롬]3:26 ...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몇 구절만 나누어도 WEA가 말한 것과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성경 말씀들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잘 아는 말씀인데 왜 이런 표현을 쓰지 못할까? 어떻게 위의 말씀처럼 WEA의 말에는 이런 표현이 들어있지 않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생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알고 믿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표현을 왜 하지 못할까?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성경의 말대로 표현하면 쉬울텐데.... 예수님이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라고 하신 말씀을 잘 이해한다면 위의 성경구절대로 구원에 관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경적인 구원에 대해서는 제3부에서 더 다루겠다. 하지만 이렇게 허점이 많고 엉성한 구원교리가 그 유명한 WEA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부담이 된다. 영생의 길을 이렇게 명하고 성경에서 벗어난 길을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WEA에 가입하고 모여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면 우리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실까? WEA 토마스 존슨의 구원 기준으로 보면, 많은 가톨릭이 형제자매들이고,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진정한 교제를 추구하며 서구 사회에 복음을 함께 전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야겠다는 말로 결론을 짓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앞으로 어떤 위험이 닥칠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WEA 구원의 복음이 이렇게 모호하다는 것을 이를 개최하는 한국 지도부가 미리 점검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해본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서 한국 합동 장로교회가 왜 이 WEA 한국 총회를 반대하고 있는지 이해가 간다. 때문에 WEA는 WEA의 구원 교리를 성경적으로 점검하기를 이 글을 통해 촉구하는 바이다. 이제 왜 가톨릭은 에큐메니컬 운동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든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지를 제2부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WEA를 염려하며...(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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